가면이 너무 잘맞아서 생긴 일 – 사랑받으려고 만든 내가, 사랑을 망치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좋아하는 영화를 물어보면 대답하기 전에 한 박자를 쉬게 됐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계산한다. 예술영화를 좋아할 것 같으면 봉준호를 꺼내고, 가볍게 웃으며 얘기하는 분위기면 마블을 말한다. 어느 쪽도 거짓말은 아니다. 그냥, 진짜를 말하기 전에 상대의 반응을 한 번 예측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이 너무 자연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이제는 어디까지가 내 취향이고 어디까지가 좋아 보이려는 취향인지, 가끔 헷갈린다.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스스로를 편집한다. 이것은 위선이 아니라 생존이다. 인간은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이는지를 끊임없이 시뮬레이션하는 사회적 동물이고, 그 능력이 뛰어날수록 더 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 능력이 연애라는 전장에 들어오면 기묘한 역설이 발생한다. 가면이 너무 잘 만들어질수록, 사랑은 더 멀어진다.

퍼포먼스가 성공할수록 진짜 자신은 관객석에 앉아 구경만 하게 된다.


연애를 잘 하는 사람과 사랑을 잘 하는 사람은 다르다. 연애를 잘 하는 사람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빠르게 파악하고 그것에 맞게 자신을 조율한다. 상대가 지적인 대화를 좋아하면 책을 읽고, 감성적인 공간을 좋아하면 카페를 고른다. 이 능력은 실제로 유효하다. 상대는 설레고 관계는 술술 풀린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서부터 이상해진다. 퍼포먼스가 성공할수록, 즉 상대가 나를 더 좋아할수록, 더 깊은 불안이 자라난다. 내가 보여준 이 모습이 진짜 나인가, 아니면 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나인가.

두 개의 나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이상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의 괴리라고 부른다. 모든 인간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문제는 괴리의 크기가 아니라, 어느 쪽을 상대에게 보여줬느냐다. 관계 초반에 이상적 자아를 보여주면 — 더 성숙하고, 더 여유롭고, 더 흥미로운 버전의 나를 — 상대는 그 버전을 사랑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그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그 버전을 계속 연기해야 한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무대는 커지고, 배역은 무거워진다.

이것이 오래 사귄 연인 사이에 찾아오는 어떤 종류의 피로감의 정체다. 흔히 권태기라고 부르지만, 사실 그것은 상대에게 질린 것이 아니다. 연기에 지친 것이다. 나를 사랑받게 만든 버전의 나를 더 이상 유지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지금 당장 가면을 벗으면 어떻게 될까. 상대가 사랑했던 것은 내가 아니라 내가 만든 캐릭터였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것이 너무 두려워서, 가면을 벗지 못한다.

가면을 쓴 채로 받은 사랑은,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전부 빚이 된다.


이상형이라는 자기기만

조금 다른 방향에서 보자. 우리는 자신을 편집하는 동시에, 상대도 편집한다. 이상형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실제 인간이 아니라, 내가 지금까지 소비해 온 수천 가지 이미지들 — 영화 속 주인공, 광고 속 연인, 드라마 속 고백 장면 — 이 재조합되어 만들어진 관념적 인물. 이 이상형이 지나치게 선명할수록, 실제 눈앞의 사람이 흐릿해진다.

우리가 누군가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할 때, 정확히 무엇에 반한 것인가. 그 사람에게 반한 것인지, 그 사람에게서 자신의 이상형 서사와 겹치는 요소를 발견한 것인지 — 그 둘은 완전히 다르다. 설레는 감정을 주는 것은 대개 전자처럼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후자인 경우가 훨씬 많다. 상대가 그 이상형 서사에서 벗어나는 순간 — 생각보다 평범하거나, 예상치 못한 결점을 드러내거나 — 설렘이 갑자기 식는 것은, 그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내 이상형이 더 이상 투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짜 사랑이 시작되는 조건

역설적이지만, 진짜 사랑은 이상형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이상형의 붕괴에서 시작된다. 상대가 내 서사에서 벗어나고, 나도 상대의 기대에서 벗어나고, 그 후에도 여전히 같이 있고 싶을 때 — 그때 비로소 관념이 아닌 실제 인간을 보기 시작한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래서 가장 오래가는 관계는 종종 처음에 별로 설레지 않은 관계다. 퍼포먼스를 차릴 필요가 없었던 관계,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이 없었던 관계.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되는 사람 앞에서는 연기가 필요 없고, 연기가 없으면 빚도 없다. 그때 비로소 나를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실감된다. 관념 속의 나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오후에 지쳐 있는 나를 — 말이 꼬이고 생각이 엉키는 나를 — 그냥 곁에 두고 싶어하는 것.

가면이 벗겨진 후에도 남아있는 사람. 그것이 진짜 관계의 시작점이다.


오늘도 누군가는 상대가 좋아할 것 같은 카페를 고르고, 읽었으면 하는 책을 들고 나간다.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 연기가 너무 완벽해져서, 정작 자신이 관객석에 앉아 구경만 하게 될 때 — 그때는 멈춰야 한다. 사랑받는 나보다 사랑하는 나가 먼저다. 그리고 사랑받는 나를 만드는 것보다, 사랑받지 못해도 괜찮은 나를 만드는 것이 더 오래 걸리고, 더 중요하다.

순간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라. 그것이 당신이 평생을 함께할 사람을 고르는 가장 정직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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