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손해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

핸드폰을 바꾸기 위해서 ‘신도림 테크노마트’에 다녀온 A의 경험담을 공유해볼까 합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휴대폰의 성지라고 불리는 이곳은 언제 방문하더라도 두렵고 무서운 장소입니다. 빨리야 2년에 한 번 가는 곳이기에 적응이 될 리도 만무하죠.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에 도착했다는 알림이 울리면 자연스럽게 심호흡을 하기 시작합니다. 문이 열리면 매우 불편한 상황을 마주하기 때문이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A를 바라보는 수십 개의 시선은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늑대처럼 느껴집니다. 어제부터 인터넷에서 많은 정보를 얻고 내일 일어날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마인드콘트롤도 했지만, 긴장된 마음은 좀처럼 풀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볼일이 급한 사람처럼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합니다. 그곳에서 충분히 안정을 취하고 나서야 미어캣처럼 조금씩 주변을 살펴보기 시작합니다. 태연한 척, 다 알고 왔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걸어가면서 구경합니다.

A는 핸드폰을 구경하는 것처럼 연기하고 있지만, 사실은 상점의 주인들을 관찰하고 있습니다. 호갱이 되지 않기 위해서 나름대로 팽팽한 기 싸움을 전개해 나갑니다. 그러면서 나에게 가장 친절하고 정직할 것 같은 사람을 찾습니다. 이때만큼은 관상은 과학이라는 말을 맹신하게 됩니다. 일단 몸에 문신이 있으면 지나갑니다. 탈색한 머리나 지저분한 수염같이 외모가 단정하지 않으면 또 지나갑니다. 앉아서 핸드폰을 보고 있다가 눈만 슬쩍 올려다보면서 ‘물어만 보고 가세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역시 지나치게 됩니다. 그러나 깔끔한 포마드에 정장 차림으로 손짓하는 사람은 또 너무 영업사원 같아서 더 빠르게 지나치게 됩니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고 나서 다시 화장실로 들어갑니다. 처음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는 없었던 걱정이 하나 추가 됐습니다. ‘혹시 누가 날 보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계속 이럴 수는 없다고 심호흡하고 나가서 가장 좋아 보이는 사람 앞에 가서 물어봅니다.

“저… 아이폰… 사러 왔는데요…”
“얼마 생각하세요?”

갑자기 스트레스가 치솟기 시작합니다. 이 말에 대답하면 안 된다는 것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답하는 순간 주도권을 내어주게 되니까요. 일단 대충 얼버무리고 나서 상담합니다. 할부원금만 알면 된다고 했는데, 막상 상담하다 보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부가서비스도 있고 유지 조건, 페이백, 사은품 등 계산해 봐야 할 것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은 귀에서 다 튕겨 나가버립니다. 주인이 답답하다는 듯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이야기하는데, A는 이미 멘탈이 나가 있습니다. 계산기에 있는 숫자를 보면서

“아~ 가격이 이…”

그러자 주인은 두 번째 손가락으로 곧게 펴서 입에 가져가서 “쉿!” 조용히 시킵니다. 핸드폰을 사러 온 건지, 아니면 총을 사러 온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적응하는 동물이기에 그렇게 몇 번 상담을 하다보니 조금씩 이해가 되어갑니다. 그렇게 상담하고 나서 뒤돌아서 메모장에 적어놓고 다시 상담하면서 A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을 계산합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났습니다. 몸도 힘들고 마음은 지쳤습니다. 그러나 덕분에 호갱이 되지 않고 스마트 컨슈머가 될 수 있습니다. 방문 매장 조건들을 객관적으로 비교·분석해서 가장 저렴한 곳을 찾아냈기 때문입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성지에 도착한 지 3시간 만에 핸드폰을 구매했습니다.

그렇다면 A는 모두 비교 분석해서 가장 저렴한 매장에서 핸드폰을 구매했을까요? 놀랍게도 A는 가장 저렴한 매장에서 구매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주말의 시간을 내서 사람도 많고 차도 많은 신도림 테크노마트까지 가서 휴대폰을 구매하려는 이유는 조금이라도 싸게 사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A는 왜 목적에 반하는 행동을 한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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