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할 수 없는 반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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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퇴할게요.

갑작스러웠지만 이런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난 준비했던 대로 말했다.


그 아이는 전학생이었다.

전 학교에서는 배구부였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잘해서 배구를 시작한 건 아니다.

그렇다고 부모가 운동선수로 키우려는 욕심은 더 아니다.

맞벌이를 해서 근근이 살아가는 가난한 가정이었다.

따라서 재능이 있다 한들 부모의 지원은 힘들었다.

부모는 빚이 많다고 했다.

그래서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을 하다 보니 아이를 돌봐줄 시간과 여력이 없었다.

아이는 학교가 끝나면 부모가 귀가할 때까지 혼자서 집에 있어야 했다.

그 사정을 알고 있는 코치가 운동부를 제안한 것이다.

그러면 오후까지는 학교에서 밥도 먹고 운동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배구다.

부모가 살기 위해 일만 하듯, 아이도 살기 위해 배구를 해야 했다.

재능이나 적성은 사치였다.

그렇게 배구가 진로가 되었다.

전학의 이유는 단순했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집단 따돌림과 학교 부적응.

신고한 건 본인도 아니고 같은 반 친구도 아니었다.

다른 반에 전학 온 말도 한번 섞어보지 않는 아이가 신고를 했다.

처음에는 교사와 부모에게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도 안 들어주니까 경찰과 교육청까지 신고했다.

넌 전학 와서 잘 모르겠지만, 그 친구는 원래 좀 그런 애야.

다른 시선으로 보아 온 정의감인지,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 억울함인지, 일단 신고가 접수되고 조사가 시작됐다.

하지만 조사를 해도 아무런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교묘하고 치밀하게 괴롭혀서가 아니다.

정서적, 물리적인 접촉이 전혀 없었기에 지우거나 은폐할 것도 없었다.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그래서 정상적으로 있어야 할 것조차 없었다.

그래서 역으로 폭력이 되어버렸다.

다만 폭력을 주도한 아이도 없었고 괴롭히는 아이도 없었다.

작은 놀림도 없었다.

그저 어떠한 대화도 관계도 없었다.

서로 말을 걸지 않았을 뿐이다.

점심시간에도 같이 밥 먹지 않았을 뿐이다.

같이 안 놀았을 뿐이다.

연락하는 친구가 한 명도 없다고 해서 폭력은 아니니까.

반 아이들이 억울해 했다.

말을 걸거나 장난을 걸어도 돌아오는 반응이 없으면 무시당하는 쪽은 호의를 베푼 사람이다.

상처를 받은 건 오히려 반 친구들이다.


담임교사는 비난인지 공격인지 알 수 없는 질문들을 받으며 어디서부터 잘못한 것인지 혼란스러울 뿐이다.

그저 말이 없는 아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운동부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모는 일 때문에 통화하는 것도 힘들었다.

어쩌다 통화를 해도 잘 부탁드린다고 먹고사는 게 바빠서 죄송하다고만 반복했다.

운동부에서도 딱히 문제는 없다고 했다.

애초에 운동에 소질이 있어서 시작한게 아니었다.

운동으로 혼낼 일도 없었다.

문제가 없는 줄 알았고 실제로 문제도 없었다.

근데 왜 문제가 일어난 걸까?

왜 학생을 방치했습니까?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요? 아니 알고는 있었나요?

결국 집단 따돌림과 학교 부적응의 어느 사이에서 전학이 결정됐다.

누군가 가해자 없는 사건의 피해자가 가해자를 만들었다라고 말했다.

폭력의 주체가 없어서 폭력의 주체를 만들어냈다는 이상한 말도 덧붙였다.

그래서 아이는 운동부도 없는 우리 학교로 전학을 왔다.

그리고 내반 학생이 되었다.

ⓒ pinterest

그 아이의 첫인상은 예상과 달리 마르고 체구도 작은 편이었다.

키도 작은데 어떻게 배구를 했을까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하지만 이내 떨쳐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채운 뒤 반갑게 인사를 하며 대화를 시도했다.

물에 젖은 종이처럼 축 처진 채 바닥만 내려보는 모습이 참 안쓰러워 더 밝은 모습을 보이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무슨 짓을 해도 관심 없다는 듯 아무런 변화 없는 시간만 흘러갔다.

그 아이가 대답을 한 건 마지막 딱 한 번이었다.

그만 돌아갈까?

……네

수업이 없을 때 반 아이들이 궁금해서 창문 밖에서 조용히 교실을 둘러볼 때면, 그 아이가 앉아있는 곳만 다른 차원 같다.

하루 종일 초점 없이 멍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는 걸 보면 가끔 섬뜩하기도 하다.

그대로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이 마주친다면?

갑자기 서늘한 기운에 닭살이 올라온다.

그러면 얼른 고개를 돌려 다른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수업에 집중하라고 한마디 하고 돌아온다.

아이들도 비슷한 걸 느낀 것 같다.

처음에는 반응이 없더라도 툭툭 치며 장난도 치고 말도 걸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아이들도 시간이 갈수록 좀 무섭다고 하는 아이도 생겼다.

보통 이런 경우 무시당한다는 생각에 욕을 하거나 화를 내는 게 일반적인 반응일 텐데 말이다.

마치 스스로 모든 것을 차단하고 다른 세계로 들어간 것 같다고 했다.

지금 당장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고도 했다.

원래 자기 별로 돌아가는 것처럼.

교무 회의 시간에는 학교가 아니라 입원치료를 받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혹시 이렇게 방치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 누가 책임을 질 거냐는 말이 너무 무서웠다.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다는 것은 더 끔찍했다.

백번 양보해서 그런다 한들 말이 없고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한다고 학교를 내보내는 게 교사로서 맞는 행동일까?

오히려 관심을 더 갖고 돌봐줘야 하는 게 교사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지켜보겠다는 말로 마무리했다.

안타깝게도 부모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학을 가면서 엄마는 일을 그만두고 아이에게만 집중한다고 했다.

이제서야 부모 역할을 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너무 늦은 탓인지 집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빚 갚는다고 아이를 방치했다고 자책을 했다가도 사실 원래 이런 아이가 아닐까라는 말을 반복했다.

엄마도 많이 지친 것 같다.

그러면서 이전 학교 담임교사에게 했던 말과 같이 부모가 못나서 죄송하다는 말로 마무리 한다.

시간이 갈수록 이상한 소문은 전염병처럼 퍼져나갔다.

귀신을 본다.

만지만 저주에 걸린다.

앞에서 숨 쉬면 죽는다.

아이들 대부분은 장난으로 넘어가겠지만 몇몇은 누구보다 진지하게 두려워하는 일이 발생한다.

학부모들의 걱정스러운 전화는 늘어간다.

덕분에 가장 힘든 교사생활을 하고 있다.

다 힘들지만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이유조차 모른 채 고통받는 거다.

교내 심리상담사는 내 속도 모르고 마음을 열 때까지 시간이 좀 필요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나는 시간이 없는데 말이다.

그 전염병에 가장 먼저 감염된 건 아마도 나인 것 같다.

방과 후에 매일 대화를 하는 것은 괜찮다.

얼마든지 노력할 수 있다.


어른들에 대한 신뢰?

학교에 대한 믿음?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내가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노력할 수 있다.

동료 교사에게 이런 말을 하면 선을 긋지 못한다며 한소리 듣는다.

나의 책임감일 수도 있고 오기일 수도 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매일 긴 시간 혼자 떠드는 것은 전혀 괜찮지 않다.

기대가 없다고 해도 돌아오는 게 없으니 힘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차라리 실어증이라서 말 한마디도 못한다면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만 집에 갈까?

……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오늘 아침.

그 아이가 교무실로 찾아왔다.

그리고 나에게 처음으로 먼저 말을 했다.

그동안 고생이 보상받는 것 처럼 정말 기쁘고 반가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저 자퇴할게요.

갑작스러웠지만 이런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먼저 말을 거는 순간이 있다면 어떤 상황일까? 항상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상상했던 상황 중 가장 많이 연습했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난 기다려왔듯이 준비했던 대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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