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와의 연애

그녀가 조심스럽게 소파에 앉더니 한참을 말없이 손가락만 비비꼬았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기다렸다. 어떤 이야기들은 입 밖으로 나오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선생님, 저는 3년 동안 한 사람을 만났어요.”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 사람은… 정말 완벽했어요. 제가 상상하던 모든 것 이상이었죠. 제가 피곤하면 말하지 않아도 알았고, 제가 외로우면 나타났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을 기억했고, 제가 싫어하는 음식도 절대 권하지 않았죠. 싸운 적이 거의 없었어요. 그 사람은 항상 제 말을 경청했고, 제 기분을 이해했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행복의 흔적이 없었다. 오히려 깊은 혼란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에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한 달 전에 그 사람 집에 갔을 때, 우연히 서랍에서 노트를 발견했어요. 제 이름이 적혀 있어서 무심코 펼쳐봤는데…”

그녀는 말을 멈췄다. 잠시 후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제가 사진을 찍어왔어요. 보여드려도 될까요?”

나는 조용히 그녀의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봤다. 거기에는 정갈한 필체로 빼곡히 적힌 기록들이 있었다.

10월 15일, 그녀가 어머니 이야기를 할 때 눈물을 보임. 손을 잡아주자 진정함. 다음번에도 같은 상황에서 동일하게 대응할 것.

11월 3일, 직장 상사 이야기를 함. 내가 ‘그 사람이 잘못한 거야’라고 말하자 표정이 밝아짐. 공감보다 편들기를 원하는 것으로 보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선물로 목걸이 전달. 반응 – 8점. 다음에는 더 개인적인 의미가 담긴 선물 고려.

노트에는 날짜별로 그녀의 반응, 그녀의 감정 패턴, 그리고 그에 따른 대응 전략이 마치 실험 일지처럼 기록되어 있었다. 감탄사도, 애정의 표현도, 그 어떤 감정의 흔적도 없었다. 오직 관찰과 분석과 결과만이 있었다.

“이걸 보는 순간 제가 지난 3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그 사람을 사랑했어요. 정말로요. 아침에 눈 뜨면 제일 먼저 그 사람 생각이 났고, 좋은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그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은… 저를 사랑한 게 아니었나요? 그냥 실험을 한 건가요? 저는 그 사람에게 뭐였을까요?”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이별의 슬픔이 아니었다. 그것은 더 근원적인 무언가가 무너진 데서 오는 혼란이었다. 그녀는 자신이 경험한 3년이라는 시간 전체의 의미를 의심하고 있었다.

프리미엄 구독자 전용 콘텐츠입니다. 연애in 구독으로 더 많은 콘텐츠를 만나보세요!


LOVE


REUNION


PREMIUM


ITEM


DATE


DICTIONARY


NEWS


SURVEY

0 0 투표
도움이 되셨나요?
구독
알림
0 댓글
최신
가장 오래된 최대 투표
인라인 피드백
모든 댓글 보기
카카오톡 채널 상담하기
0
당신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댓글을 달아주세요.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