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사랑하는 방법을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을까

이혼 법정에서 5천 쌍을 지켜본 판사의 기록은, 사실 관계 상담실에서 매일 목격하는 장면과 정확히 겹쳐진다.

문제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상담실에서 커플을 만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이 두 사람이 각자 따로 있었다면 아마 꽤 괜찮은 사람들이었을 거라고. 그런데 같이 있으면 서로를 최악으로 만드는 조합이 된다. 사랑했던 사람이 왜 이런 사람이 되었냐고 묻지만, 사실 그 사람은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우리가 그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배운 적이 없었을 뿐이다.

최근 이혼 전문 법관의 인터뷰를 우연히 봤다. 5천 쌍 이상의 이혼 당사자를 직접 만난 그분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무섭도록 익숙했다. 관계 상담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읽으니 더 그랬다. 법정에서 보는 장면과 상담실에서 보는 장면이 너무 정확하게 일치해서.


가장 흔한 오해부터 짚고 싶다. 이혼하는 커플에게는 대부분 드라마틱한 사건이 있을 거라는 오해. 외도, 폭행, 큰 배신. 물론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5천 건의 이혼을 들여다본 판사가 말한 것도, 상담실에서 수백 쌍을 만난 내가 목격한 것도 같다. 대부분의 관계는 폭발이 아니라 부패로 끝난다.

부패는 조용하다. 어느 날 갑자기 냄새가 나기 시작하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아주 미세하게 시작된다. 상대가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은 느낌. 주말 계획을 물어봐도 대충 답하는 것. 내가 힘들다고 했을 때 돌아오는 “그래서 어떡하라고”라는 반응. 이것들은 사건이 아니다. 그냥 일상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증거가 없으니까.

관계 심리학에서는 이걸 ‘감정 부채(emotional debt)’라고 부른다. 말하지 않은 불만, 표현하지 않은 서운함이 쌓이면 나중에는 이자까지 붙어서 돌아온다. 어느 날 터지는 큰 싸움의 진짜 원인은 대부분, 그날 있었던 일이 아니다.

커플 상담에서 내가 첫 번째로 하는 작업이 바로 이 부채를 꺼내는 것이다. “오늘 싸운 이유가 뭐예요?” 라고 물으면 “설겆이를 안해서요”라고 답하는 커플이 있다. 근데 이야기를 30분만 들어보면, 그릇은 방아쇠였고 실제 총알은 몇년 전부터 장전되어 있었다는 걸 알게 된다.


우리가 배운 관계 교육의 정체

생각해보면 우리는 관계에 대해 두 가지 경로로 배운다. 부모의 관계를 보거나, 드라마와 영화(매체)를 보거나. 전자는 생생하지만 롤모델이 될 수 없는 경우가 많고, 후자는 극적이지만 현실이 아니다. 그러니까 사실상 우리는 제대로 된 관계 교육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법관도 똑같이 말했다. 국어, 영어, 수학은 학원까지 보내면서 부부 관계는 결혼하면 자동으로 잘될 거라고 믿는다고. 이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실제로 뇌과학적으로 봐도 관계 스킬은 훈련되어야 형성된다. 공감 능력, 갈등 조율, 감정 조절 — 이것들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반복된 경험과 피드백을 통해 배워지는 것들이다.

심리학자 존 가트맨(John Gottman)은 3천 쌍 이상의 커플을 연구한 끝에 관계의 ‘4대 종말 징후’를 발견했다. 비난(Criticism), 경멸(Contempt), 방어(Defensiveness), 회피(Stonewalling). 이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경멸이다. 상대를 무시하거나 눈을 굴리는 행동 하나가, 모든 다정한 순간을 무효화한다.

커플 상담에서 내가 가장 먼저 보는 신호도 이것이다. 서로를 ‘설명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지, ‘판단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지.


아이들 때문에 참는 게 왜 아이들에게 나쁜가

법관이 이 부분에서 꽤 단호하게 말했는데, 상담사 입장에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이들 때문에 참고 산다”는 말에는 두 가지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첫 번째는 아이들에게 행복하지 않은 관계의 원형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가 말로 가르치는 것보다 부모가 서로를 대하는 방식에서 훨씬 더 많이 배운다. 엄마 아빠가 늘 긴장되어 있고, 식탁에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투가 날카롭다면, 그 아이는 ‘관계란 원래 이런 것’이라고 학습한다. 그리고 그 원형을 가지고 자신의 연애와 결혼을 시작한다.

상담실에서 이런 사람을 많이 만난다. “저는 왜 항상 나한테 차갑게 대하는 사람에게 끌릴까요?” 어릴 때 봤던 관계의 온도가, 성인이 된 후 ‘편안함’의 기준이 되어버린 경우다.

불행히도 우리는 익숙한 것을 사랑이라고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다.

두 번째는 아이에게 실질적인 죄책감을 심는다는 것이다. “너네 때문에 참는다”는 말을 들은 아이는 사랑받는 게 아니라 짐이 되는 느낌을 받는다. 판사님이 전한 열한 살 아이의 말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돈다. “내가 엄마를 따라가면 아빠가 너무 힘들 테니까.” 그 아이는 자기 슬픔보다 아빠의 고통을 먼저 계산하고 있었다. 어른처럼.

아이들은 부모의 불행을 목격하는 것이 아니다. 그 불행의 무게를 자기 어깨에 올려서 걷는다.

그리고 그 무게는 성인이 된 후에도 내려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는 못 바꾼다, 그래서 내가 먼저다

상담에 오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있다. “상대방을 어떻게 바꿀 수 있어요?” 안타깝지만 이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은 ‘못 바꾼다’다. 적어도, 직접적으로는.

관계 심리학에서 ‘상호성의 원칙(reciprocity principle)’이라는 개념이 있다. 관계 안에서 한 사람이 패턴을 바꾸면, 시스템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상대방도 다르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내가 방어적으로 반응하던 걸 멈추면, 상대의 공격성이 유지될 근거가 사라진다. 내가 차갑게 굴던 걸 멈추면, 상대가 거리를 두던 이유가 사라진다.

법관이 한 말도 정확히 이것이다. “저쪽이 할 계기가 생기도록 일단 나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이건 착한 사람이 손해보는 이야기가 아니다. 관계라는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이다.

파트너에게 화가 날 때, 이 질문을 먼저 해보자. “내 아들(또는 딸)이 나중에 배우자에게 내가 지금 하려는 이 말을 듣는다면?” 판사님도 같은 방법을 쓴다고 했다.

이건 단순한 자기 검열이 아니다. 분노와 행동 사이에 의식적인 공간을 만드는 훈련이다. 그 공간이 생기는 순간, 우리는 반응이 아니라 선택을 할 수 있다.


이혼 후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는 타이밍에 대해서도 짚고 싶다. 법관의 관찰과 상담 데이터가 일치하는 부분이 또 있어서다. 이별 후 서둘러 새 사람을 만나면, 전과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비슷하게 끝난다는 것.

왜 그럴까? 우리가 상대방을 고를 때 의식보다 훨씬 강하게 작동하는 것이 있다. 바로 ‘애착 패턴(attachment pattern)’이다. 어린 시절 형성된 애착 방식이 성인이 된 후의 연애 스타일을 결정한다. 불안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자꾸 확인받고 싶어하고, 회피형 애착을 가진 사람은 친밀해질수록 거리를 둔다. 이 패턴은 이별한다고 리셋되지 않는다.

그래서 다음 사람을 만나기 전에 가장 필요한 작업은, 전 연인을 욕하는 것도, 새 스타일의 이상형을 찾는 것도 아니다. 내 패턴을 이해하는 것이다. 내가 왜 그 사람에게 끌렸는지, 무엇이 반복되었는지, 내가 상대에게 무엇을 원했고 무엇을 회피했는지.

혼자서 충분히 행복한 사람이 연애를 시작하면, 관계가 다르게 작동한다. 결핍을 채우러 가는 게 아니라 이미 가진 것을 나누러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에게 요구하는 무게 자체가 달라진다.


관계 상담을 하면서 내가 가장 안타까운 순간은, 상담실에 오는 커플들이 “이미 늦었다”고 느낄 때다. 사실 그 판단이 맞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더 많은 경우, 조금만 일찍 왔다면 달라질 수 있었다.

법관은 말했다. 이혼 법정에 오면 이미 부부로서의 관계는 대부분 파탄난 상태라고. 회복은 법정 밖에서 일어난다고. 이건 무서운 말이다. 우리가 관계에서 도움을 구하는 시점이 너무 늦다는 뜻이니까.

사람들이 상담을 꺼리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비용, 시간, 낙인, 그리고 “우리가 그 정도는 아니잖아”라는 안도. 근데 상담은 관계가 망가졌을 때 가는 곳이 아니다. 더 잘하고 싶을 때 가는 곳이다.

당신의 관계가 지금 조용하다면, 꼭 좋은 신호는 아닐 수 있다. 때로 가장 위험한 관계는 아무 말도 안 하는 관계니까. 말하지 않은 것들이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안다. 쌓인다. 그리고 어느 날 이자까지 붙어서 터진다.

사랑은 느끼는 것이지만, 관계는 만드는 것이다. 느끼는 건 자연스럽게 되지만, 만드는 건 배워야 한다.

우리가 아직 그걸 배우지 못했다는 게, 사실 가장 솔직한 진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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