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의 벽



ⓒ pinterest


오늘은 고등학교 3학년 때 반 친구들과의 모임이 있는 날이야.

분기에 한 번 정도는 모임이 생기는 것 같아.

아! 강제는 아니야.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도 모르는 오랜 단톡방이 있긴 한데, 평소에는 아주 조용해.

그러다가 누군가 야 다들 잘 지내냐? 한번 모일 때 되지 않았냐?ㅋㅋ라고 말을 던지면 무덤에서 좀비가 기어 나오듯이 다들 앞다투어 말을 하기 시작해.

마치 누군가 소환 주문을 외쳐주길 기다려온 것처럼 말이야.

다들 서로 말하느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듣게 않는 게 마치 좀비의 비명처럼 들려ㅎ

나도 그러지 않냐고?

난 좀비 따위가 아니야.

그렇다고 좀비를 부르는 마법사도 아니고 어두운 땅속 밑에서 불러주길 손꼽아 기다리던 좀비 보스도 아냐.

난 굳이 따지자면 좀비 영화 관객 같다고 할까?

사실 누군가(마법사)의 인사(소환 주문)가 알림으로 울리는 순간부터 난 다 지켜보고 있어.

내가 지켜본다라고 말하는 건 단톡방에 입장하지 않는다는 말이야.

단톡방에는 입장하지 않은 채, 채팅화면에서 그들의 대화를 눈팅하고 있어.

대부분 좀비들의 언어인 ㅋㅋㅋ가 대부분이지만ㅎㅎ

그렇게 한동안 아무도 묻지 않은 근황 토크가 쏟아지기 시작해.

이때 톡이 빠르게 올라오기 때문에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한 시간이야.

1초라도 딴생각을 하면 놓치기 때문에 동체시력을 훈련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인 것 같아.

내가 운동선수는 아니지만 언젠가는 도움이 되지 않을까?

빠르게 지나가는 차 번호를 보고 기억하거나, FPS 게임을 할 때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어때? 굉장하지?

좀비들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서로 바쁘게 이야기를 해.

오늘의 주요 이슈들은 영수가 환승 이별 당했다는 놀라운 이야기, 소민이가 삼촌 회사에 취업했다는 불건전한 뉴스, 민수는 모은 돈을 전부 털어서 코인 탑승했다가 다 잃었다는 흔한 썰 등을 관람하지.

한번 지나가면 볼 수 없기 때문에 재밌는 건 메모장에 적기도 해.


내가 이상하다고?

왜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 알아.

단톡방을 확인하면 된다고 생각하겠지?

사실 내가 신비주의나 관종이라서 안읽씹 하고 있는 건 아냐.

나도 여기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있기 때문이야.

얼마 전 이상한 사람들 모여봐라는 오픈 채팅방에서 이야기했을 때도 다들 그런 반응이었어.

사람들이 자기가 얼마나 이상한지 이야기하는 방이었는데, 누가 더 이상한 사람인지 겨루는 분위기는 아니었어.

내가 느끼기에는 공감을 받고 싶고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었던 것 같아.

근데 정말 이상한 사람들이 많았어ㅎㅎ 본인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말이야.

횡단보도에서 흰색 줄만 밟는 사람, 새끼손톱만 기르는 사람, 액땜한다고 4시 44분에 알람 설정해 놓은 사람 등. 참 이상한 사람들이 많더라.

근데 웃긴 건 그런 사람들에게는 그럴 수 있다라고 공감하면서 나는 이해가 안 된대!

일단 이해는 둘째치고 되게 피곤한 사람이래.

그래 인정해. 인정 못하는 건 아닌데!

아니, 옷을 다 벗어야만 똥이 나온다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 그래서 집에서만 싼다는데 말이야.

근데 애초에 생리현상이 마음대로 되는 거야?

뭐, 암튼 가장 이상한 사람 투표에서 내가 1등 했어. 하하.

앗, 집중해!

지금 친구들 단톡방에서도 투표를 시작하고 있어.

결국 이 대화의 목적인 모임 날짜를 정하는 일이 남은 거지.

다들 시간을 맞추려고 애써보지만 이 많은 사람이 시간을 통일한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

누구는 주말 아르바이트를 하고 누구는 학원을 가고 또 누구는 시험 기간이고.

그래서 결국 투표로 결정을 할 수밖에 없어.

매번 반복되는 일인데 좀비라서 그런지 학습능력이 없는 것 같아ㅎ

처음부터 투표를 하면 편할 텐데 말이야.

나도 덜 피곤하고.

야, 근데 안 읽은 사람 한 명 누구야?

어? 한 명 누구지? 유령 계정인가?

근데 지난번에도 그렇고 우리 반이 몇 명이나 된다고 나를 못 찾는 거지?

하긴 내가 1년 전부터 관람만 했으니까, 모를 수도 있을 거야.

그럴 수 있어. 같은 반이라고 해도 1년 정도면 몇 명인지 잊을만해.

그렇게 이 좀비들은 누가 안 읽었는지 잠시 동안 탐정놀이를 하다가 곧 포기하고는, 그때 보자라며 마무리 인사를 시작해.

그래, 지금이야!

다들 내가 누군지 궁금하고 찾고 싶어도 못 찾고 있는 지금.

짜잔~!

지금이 내가 관람객에서 등장인물로 참여하는 순간이야.

그리고 1년 전 톡부터 쌓여있던 톡에 숫자 1이 사라지는 마법 같은 순간이지!

야 오랜만이다! 다들 잘 지내? 1년 만인가?ㅋㅋ

이제 반대로 내가 보낸 톡에 숫자가 생겼어.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이내 숫자도 사라졌어.

그런데 다들 바빠서 볼일 보러 갔는지 다들 말이 없더라고.

그렇게 한참을 기다려봤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답은 없었어.

1년은 궁금해하기에 좀 짧은 시간이었나 봐ㅎ

ⓒ pinterest

그렇게 몇 년 전부터 시리즈를 이어오던 이 영화는 끝났어.

끝이라고 하는 이유는 등장인물들이 다 퇴장했기 때문이야.

제4의 벽을 깨고 등장인물과 대화하는 건 사실 불가능하다는 걸 잘 알고 있어.

부산행을 보면서 마동석에게 뒤에 조심해!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들을 수 없는 건 당연한 거잖아?

투표 결과를 확인해 봤어.

다음 주 토요일 오후 7시. 내가 그때 일정이 있는지 볼까?

아쉽게도 그때는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가고 싶어도 못 가겠다.

아 난 약속이 있어서 못 갈 것 같아. 다들 재미있게 놀아!라고 썼다가 바로 지워버렸어.

모두 퇴장하고 영화관에는 나만 남아있었거든.

무엇보다 영화는 이미 끝났으니까.

한편으로는 살짝 후회도 해.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재미를 위해 등장인물이 아닌 관람객으로 남아있었다면 어땠을까?

다시 새로운 영화를 보고 싶어도 이제는 볼 수가 없어.

대신 그동안 제대로 보지 못했던 지난 영화들을 정주행 해야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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