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칼럼1] 사람이 변하나요?

사람이 변하나요? 아니, 사람은 변할까요?

간단히 답변하기에는 참 곤란한 질문입니다.

만약, 정말 사람이 변하는지 궁금해서 묻는 거라면, 정말 쉬운 질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변할 가능성이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이 질문의 의도가 그게 아니라는 것쯤은 중학생도 다 알고 있어요.

그리고 이 질문은 상담 중 반드시 듣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상담뿐만이 아닙니다.

어떤 모임이든 자신을 상담사라고 소개하면, 참여자 중에서 자신의 대인관계에 대한 고민을 말하면서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물론, 고민을 말하는 그 사람도 제가 정말 말끔하게 해결해 줄 거라고 믿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직업윤리(?)가 발동하기 때문에 그 뿌리 깊은 고민을 진지하게 경청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고민입니다.

집에 오면 소파와 혼연일체가 되는 남편, 방에서 나오지 않고 게임만 하는 아들, 하루 종일 잔소리하시는 어머니, 책임과 의무를 떠넘기는 직장 상사 등 다양한 관계에서 각자 다른 고민을 안고 살아가지만, 질문은 모두 동일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변하나요?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는 말도 있던데…”

맞습니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은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라는 의미겠죠.

사람이 변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정말 강력한 의지와 뼈를 깎는 노력이 아닌 이상 쉽지 않습니다.

자신이 변하기도 이렇게나 어려운데, 다른 사람을 변하게 한다는 것은 어떨까요?

정말 어렵지 않을까요?

그리고 다른 사람을 변하게 만들고 싶다면?

내가 먼저 변해야지만 가능합니다.

내가 변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에게만 변하라고 하는 것은, 나는 옳고 네가 틀렸으니 고치라고 설득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변하는 사람이 있던가요?

“당신이 먼저 변해야 그 사람이 변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으면 절대 변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버틴 게 억울해서라도 안 들을걸요?”

하지만 이어지는 반응도 같습니다.

커다란 한숨과 함께 “이건 누가 봐도 그 사람이 잘못한 거 아닌가요?”는 말이 나오죠.

맞습니다.

지금 말해준 내용만 보면 그 사람은 나의 마음도 노력도 몰라주는 아주 이기적이고 못된 사람이죠.

그런데 관계는 감정에 기반한 거라서 잘못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우리가 법정에 설게 아니라면 말이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사람이 변하나요?”

여기서부터는 진짜 상담의 영역이지요.

예를 들어, 새해 첫날 다이어트의 의지를 다지고 헬스장을 1년 등록해도 한 달을 채 못 가는 데, 내가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다른 사람의 살까지 빼줘야 한다니… 난이도가 엄청 높습니다.

일단 나부터 작심삼일을 꾸준히 반복해야 하는 일이죠.

아무튼 일단 사람들은 이것부터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문제는 상대방에게 있고, 나는 문제가 없으니까요.

결국, 이 말의 속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상대방이 문제가 있어서 고치고 싶은데, 고칠 수 있나요?

이런 마음가짐으로 상대방에게 상담받으러 가자고 합니다.

그러면 상대방은 이렇게 말하죠.

난 문제가 없으니, 당신이나 가서 상담받아.”

당연하겠죠?

상대방 입장에서는 이 관계에서 켜켜이 쌓여온 내막도 잘 모르는 상담사에게 불편한 소리를 들을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러나 답답한 사람 입장에서는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니까 조급하고 걱정돼요.

그래서 제삼자에게 객관적으로 들어보자고 자충수를 두게 되고, 다시는 상담에 대해서는 절대 말도 못 꺼내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는 게 상담사가 누구의 편을 들어줄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상담사는 잘잘못을 가려주는 판사가 아닙니다.

헛된 기대를 품고 있는 거죠.

더군다나, 이런 선입견을 갖고 상대방과 대화하면 어떨까요?

당연히 그 의도가 다 드러나게 됩니다.

예민하고 눈치 빠른 상대방은 당신의 의도를 이미 다 꿰고 있으니까요.

그러면 판사 앞에 더더욱 가지 않으려고 하겠죠?

상담사만 억울합니다.

“정말 사람이 변하나요? 그 사람도 변할까요?”

2년 전에 재회 상담을 하셨던 분 이야기를 해보죠.

상대방에게 잠수 이별 당했지만, 아직 사랑한다면서 재회를 원하시는 분이었습니다.

3년 정도 같은 문제로 오랜 기간 갈등을 겪어왔고 그때마다 잠수를 탔던 상대방이 있지만 이번에는 평소와 많이 달랐기에 이별의 위기를 직감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내담자가 바라는 건 잠수를 안 타도록 고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내담자의 기대와 달리, 가장 먼저 한 작업은 잠수를 타는 것을 고치려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본래 모습 그대로 존중해 주고 공감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내담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말 그 사람은 내 말이 맞지 않냐고, 자기가 잘났다고 더 기고만장해질 것 같은데요?”

선생님 말씀은 이해했는데, 그러면 나만 노력하는 거 같아요. 그렇게 해서는 안 변할 것 같은데요?

상대방에게 쌓인 게 많고 억울한 일도 많았다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내담자의 생각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어요.

존중과 공감해 줄 때마다 더 기고만 해지는 사람이었다면, 처음부터 이 연애를 시작하지 않았을 거니까요.

오히려 상대방은 존중받지 못해서 오랜 기간 상처를 받아왔습니다.

그리고 존중받지 못했기 때문에 잠수부가 되었던 거죠.

그리고 그렇게 대화를 했더니,

“선생님 그렇게 대화해봤어요.(중략) 그 사람이 울면서 그렇게 말하는 건 처음 봤어요.”

“아무래도 제가 그 사람을 잘못 알고 있었나 봐요. 너무너무 미안해요.”

사람은 누구나 있는 그대로 봐주기를 바랍니다.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과 같으니까요.

나를 문제가 있는 대상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나는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생각해 보세요.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은, 자신이 정답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대부분 모릅니다.

혹시, 누군가를 문제의 대상으로 여기고, 고치려 시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볼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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