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 칼럼2] 재회 이론(공식)이 있을까요?

재회 이론이나 공식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건강한 연애와 행복한 관계에 대해 철학을 갖고 꾸준히 노력하는 상담사는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연애 상담 분야는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을을 되지 않으려면 무조건 주도권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꼬시면 된다는 가치관, 이별의 이유를 가치로만 평가하는 재회 이론, 최초로 정립했다는 재회 심리학 등 정말 위험합니다.

경력을 쌓아간다는 건 전문가가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경력이 오래된 것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결과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무엇보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내담자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것이 전문가입니다.

그리고 요즘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영역들과 연결하여 사고의 틀을 확장하는 것도 중요한 시대가 되었고요.

하지만 어떤 상담사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좀 나쁘게 말하면 모든 비판을 막기 위해서 자신만의 성을 견고히 쌓아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내담자의 건전한 비판을 공격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방어적인 행동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내담자의 의문을 해소해 주는 것이 아닌, 오히려 내담자의 지능이 부족해서 이해하지 못한다고 무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특정한 공식이나 이론을 만들어서 내담자를 끼워 넣는 것입니다. 이런 상담은 내담자의 사례와 맞지 않는 이론을 적용해서, 절대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그런 상태로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전략을 사용합니다.

애초에 상담을 받기 어렵게 만들어서 “얼마나 자신이 있길래, 이렇게 당당한 태도를 보이지?” 이런 생각이 들게 해서 신뢰도를 올리기도 하고, 사람의 모든 경우의 수를 단순하게 몇 가지 이론으로 만들어서 맹목적으로 믿게 만들기도 하며, 애초에 수용력이 높은 사람만을 대상으로 상담합니다. 만약에 이론에 대해 비판이나 반박하면,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해도 내담자의 부족함을 탓하며 이론이 얼마나 훌륭한지를 주장합니다. 근거는 심리학자의 몇 가지를 교묘하게 짜깁기해서 유리하게 편집한 것이지요.

그렇지 않으면 이론 혹은 특정 솔루션으로 쌓아 올린 명성이 위험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들이 정체성이자 상업적으로 중요한 수단이라면 더욱더 지켜야 합니다. 내담자가 이론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당신은 우리와 맞지 않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진상 내담자가 됩니다.

내담자라는 ‘현실’과 이론이라는 ‘허상’이 부딪친다면, 내담자가 아니라 이론이 잘못된 겁니다.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 이럴 때, 전문가는 이론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게 아니라,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재회 이론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상담이 쉽고 간편해집니다.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상담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매뉴얼이 존재하니까요.

당신의 가치가 상대방보다 낮습니다.”
“이 지침 문자를 보내고 차단하세요.”
“이해하지 못하는 건 지능이 낮기 때문입니다.”
“이 공식대로 메시지를 작성해서 보내세요.

공식과 이론들이 준비되어 있고, 의지할 곳이 필요한 간절한 내담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결국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론들이 아무런 근거도 없는 허무맹랑한 말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고 사람들의 공감받을 만한 내용이니까요. 이렇게 공식을 만들어 놓으면, 상업적으로도 유리합니다.

왜냐하면, 공식에서 벗어나는 상담은 매우 어려운 사례이기 때문이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간단합니다.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 고액 상담을 결제하면 됩니다.

참 쉽죠?

결국 시간이 갈수록 내담자들의 비판을 받는 부분은 방어하는 전략이 더욱 강화되면서, 그의 성은 점점 더 견고해집니다. 밖에서 볼 때는 오래되었고 웅장한 모습의 성에 홀려서 들어간 사람들은, 안에는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곧 실망하게 됩니다.

이것은 내담자의 문제도 있습니다. 본질이 아니라 편법으로 쉽고 간편하게 해결되기를 바라는 욕심 때문에, 상술에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을 누군가는 이용하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의 마음은 보이지도 않기에 참 어렵습니다. 보여주고 싶지 않으면 원하는 만큼 숨길 수도 있고, 감추고 싶으면 거짓말도 할 수 있으니까요. 마음은 감정의 영역이기에 연애의 이론이 존재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의 마음은 늘 그렇듯, 불확실할수록 더 확실한 것을 원합니다.

불안할수록 확신을 주는 것에 더 끌립니다. 삶이 어려울 때, 자신도 모르게 신에게 기도하듯이 말이죠.

그렇다면 연애에서 가장 불안하고 간절해질 때가 언제일까요? 바로 이별을 통보받았지만, 아직 헤어지고 싶지 않은 상황, 재회를 원할 때입니다. 우리는 가장 나약하고 힘들 때, 듣고 싶은 말, 바라는 것을 믿게 됩니다.

새로운 회원을 모집하려고 입문 강의를 개설한 젊은 초월명상 강사 두 명은 자신들이 마련한 프로그램을 수강하면 기초 단계의 내적 평화부터, 공중에 뜨거나 벽을 통과하는 등 수강료가 훨씬 비싼 고급 단계의 놀라운 능력까지 온갖 바람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이렇듯 특별한 회원 모집 강의에서 어떤 설득 기술을 사용하는지 알고 싶어 참석을 결정했는데, 평소 이런 일에 관심을 보이던 통계학 및 기호논리학을 전공한 교수 친구를 한 명 데리고 갔다.

강의를 끝낸 강사들이 질문하라고 하자 친구는 손을 번쩍 들더니 침착하지만 단호한 어조로 프레젠테이션 내용을 철저히 반박하기 시작했다. 채 2분도 지나지 않아 강사들의 복잡한 주장에서 어떤 부분이 왜 모순되고, 비논리적이며, 근거 없는지 정확히 지적해냈다. 강사들은 대단히 충격을 받은 듯했다. 잠시 어안이 벙벙해 있다가 각자 답변을 시도하던 그들은 이내 포기하고는 서로 뭔가 의논하더니 결국 내 친구의 지적이 ‘더 연구해 볼 가치가 있는’ 훌륭한 지적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나에게 더 흥미로웠던 점은 청중의 반응이었다.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자 수많은 청중이 초월명상 프로그램을 수강하려고 계약금 75달러를 들고 두 강사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프레젠테이션을 완전히 망치고 망신을 당했다고 생각했는데 신기하게도 엄청난 설득력을 발휘해 대성공을 거두었으니 말이다. 나 역시 상당히 놀라긴 했지만, 청중이 내 친구의 논리적인 주장을 이해하지 못해서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사실은 정반대였다.

강의가 끝나고 강의실 밖에 서 있는데 이미 계약금을 납부한 청중 세 명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우리에게 강의에 참석한 이유를 물었다. 우리는 참석 이유를 알려주고 세 사람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나는 세 사람이 초월명상 프로그램에 등록한 것은 틀림없이 논리학자인 내 친구의 반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 생각하고 내 친구의 발언 내용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았다. 놀랍게도 그들은 내 친구의 주장을 꽤 정확하게 이해했다. 아니, 사실 매우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내 친구의 주장이 매우 타당하고 설득력 있어 오히려 그들은 현장에서 즉시 등록을 했던 것이다. 세 번째 대변인 남자의 말을 듣고 그 사실을 확인했다.
“사실 저는 지금 거의 빈털터리라 오늘 밤 당장 등록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릴 생각이었죠. 그런데 여기 당신 친구분이 반론을 제기하자 당장 돈을 내고 등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오늘 집에 돌아가서 고민할 테고, 그랬다가는 ‘절대’ 등록하지 못할 테니까요.”

<설득의 심리학, 로버트 치알디>

사람은 일상생활에 심각한 지장이 초래될 정도의 문제가 발생한다면, 누구보다 애타게 해결하고 싶어 합니다. 주변에서 아무도 이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더 그럴 겁니다. 내 편이 없다는 건 정말 견디기 힘들기 때문이죠. 연애에서는 이별의 상황이 그렇겠죠. 영원할 것 같았던 내 편이 사라졌으니까요. 다른 사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외로움이 찾아왔잖아요. 친구들이 우리를 위한 위로와 조언을 해주긴 하지만, 내 문제를 직접 해결해 줄 수는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는데, 상황은 더 악화되고 말았어요.

더 이상 방법이 없고, 포기해야 하는 그 순간, 재회 이론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 이론만 믿고 따라간다면 재회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찾은 것입니다. 성공 사례가 나의 사례와 완전히 똑같다고 생각됩니다.

그러면 이제 깊은 암흑 구덩이에 빠져있던 나에게 구세주처럼 보일 겁니다. 그래서 간절한 만큼 그 이론을 믿고 싶은 마음도 간절해집니다. 나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으니까요. 마음이 힘들수록 복잡하고 교과서적인 것보다 간단하고 쉬운 길에 끌리게 됩니다.

사실 재회를 바라는 입장에서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지금 이론이 맞고 틀리고,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무너진 삶과 아무런 희망도 없던 마음에 아주 작은 가능성이지만 희망의 씨앗이 생겼다는 것이 중요한 거죠. 아주 작은 가능성이긴 하지만 그 희망이 생겼다는 것 자체는 매우 큰 변화입니다.

0%와 0.1%는 다르니까요, 믿고 싶은 건 이론이 아니라 희망이잖아요? 그런데 안타깝지만, 그 이론을 맹신한다면 재회의 가능성을 더 사라지게 만듭니다. 일부의 성공 사례가 전부를 대변하지는 않습니다.

똑같은 사례가 어디에도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공식이나 이론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이미 알고 있지 않나요? 재회 이론이나 재회 공식은 없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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