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눈박이

나는 어릴 때부터 친구들에게 자주 놀림을 당했다.

그럴 때마다 당연하게도 펑펑 울면서 집에 들어갔다.

놀란 엄마는 그런 나를 힘껏 껴안고 늘 주문처럼 말했다.

지금은 지민이가 다르다는 이유로 속상한 날이 많을 거야.

사실 넌 누구보다 특별한 아이란다.

아직은 세상이 지민이의 특별함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러는 거야.

언제 가는 친구들이 너의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날이 올 거란다.

다정한 엄마의 말은 아픈 내 마음을 달래주었고 난 그 말을 굳게 믿었다.

그 말을 되뇌며 그날이 빨리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내가 어른이 되어갈수록 세상은 엄마 말과 달랐다.

그들은 내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모든 수단과 방법으로 알려줬다.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혹시라도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1분 1초라도 잊을까 봐 걱정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난 세상 속에서 학생이라는 말보단 ‘장애인’, ‘장애우’라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사실 더 자주 들었던 말은 애자라는 말이었지만.

배려를 바라기보다는 차별을 멈춰주길 바라는 때가 더 많았으며, 따뜻한 시선보다 차가운 시선을 거둬주길 바라는 때가 더 많았다.

ⓒ pinterest

지민이? 지민이도 좋지만 엄마는 다른 친구들하고도 어울리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세상은 엄마가 말했던 것과 많이 달랐다.

세상은 내가 다른 게 아니라 틀렸다고 말했다.

엄마가 말해주던 세상은 나를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이상한 사람으로 분류했다.

학창 시절에 나는 함께 어울리면 안 되는 존재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배려라는 이름으로 기피하는 존재가 되었다.

지민 씨, 이런 말 하기 좀 그렇지만, 솔직히 말할게요.

우리 회사에서 같이 일하기 힘들 것 같네요. 미안합니다.

처음에는 온 힘을 다해 세상과 싸워보기도 하고 부당함을 목놓아 외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나는 세상에 돌연변이 같은 존재라는 거였다.

처음에는 나도 다르지 않다고.

당신들과 같은 사람이고 소리를 높였다.

고등학교는 좀 다르겠지.

대학은 그래도 다를 거야.

어른이 되면 정말 다를 거야.

그래, 사람이 아니라면 시스템을 믿어보자.

사회에 보호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채워가며 부당함에 대항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돌아오는 건 침묵이었다.

그래, 네 말이 맞지, 맞아. 불공평한 거 맞아.

근데 사회가, 시스템이 곧 사람이야.

억울하고 분한 마음에 피를 토하듯 소리치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 결국 세상은 도전하고 싸워서 이기는 대상이 아니라 순종하고 양보하고 수용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밤마다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특별한 선물이라며 매일 나에게 주문을 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 행복할 것이고 더 나아질 거라며 신에게 구원해 달라고 말한다.

그럴 때 가끔 난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를 이렇게 만든 신과 엄마가 기도하는 신은 같은 신일까, 다른 신일까?

많은 시간이 흐르면서 체념이 일상이 되어갔다.

그래도 이상한 나라도, 열심히 노력하면 그래도 인정은 해주겠지?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그런 마음을 이해해 주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런 믿음으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아니, 이해받기 위해 더 많이 노력했다.

하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다른 사람에게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들을 난 노력 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억울한 마음 또한 커져갔다.

끝없는 노력이 힘들어서 좌절하는 날도 반복됐다.

그럴 때마다 세상과 신을 원망하고 사람을 증오하고 엄마를 미워했다.

그런 모든 분노를 엄마에게 쏟아내고 나면, 엄마의 주문이 나를 다시 일어나게 만들었다.

그 주문은 나를 위한 주문이 아니라 엄마를 위한 것이라는 걸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 pinterest

그리고 다시 세상에 인정받기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야 했다.

내가 하고 싶고 좋아하는 일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필요한 일을 선택해야 했다.

다른 사람은 숨 쉬는 자연스럽게 하는 말과 행동이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단어를 써야 하는지부터 고민을 해야 했다.

얼마의 거리를 유지해서 말을 걸어야 사람들이 피하지 않는지 계산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적당히라는 말은 나에게는 가장 어렵고 미지의 영역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허용된 오차 범위가 20이라면 나에게는 1밖에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만큼 그들은 나의 노력을 인정해 주지도 이해해 주지도 않았다.

끊임없이 벽과 부딪치는 기분이었다.

절대 오를 수 없는 거대한 벽.

그럴 때마다 엄마는 그들을 더 이해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고 용기를 주었지만, 점점 지쳐만 갔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을 때 찾아오는 절망감.

좌절했을 때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용기와 시간만 있으면 다시 노력하는 것이 가능했었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서 오르고 오른 곳이 결국 절벽 끝이라면, 내려가서 다른 산을 오르기보다는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

너무 힘들다.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

하지만 잠시 쉬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건 옆에 엄마가 있기 때문이다.

난 더 이상 세상과 나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내가 포기하는 순간 엄마도 모든 걸 포기할 거라는 걸 알기에 오늘도 다시 엄마의 주문을 외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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