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10대의 연애, 리얼리티 중심에 서다

무해한 10대의 연애, 리얼리티 중심에 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19/20(열아홉 스물)’에서 평석과 희지 커플. 두 사람은 프로그램에서 최종 커플이 됐고, 방송 이후 유튜브 채널을 통해 활동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 1. 열아홉 살엔 ‘연애 금지’ 규칙이 있는 학교에서 함께 수업을 듣던 친구들이 스무 살이 되는 1월 1일부터 합숙을 시작한다. 연애 금지 규칙은 사라지고 아이들 사이 기류도 달라진다. ‘밀당'(연인 사이 밀고 당기는 줄다리) 대신 솔직한 대화가 오간다. “너 말고 궁금했던 사람이 없었어”라는 평석에게 희지는 “나도 너만 보였어”라고 화답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19/20(열아홉 스물)’

# 2. 예술고등학교 학생들이 첫사랑을 찾기 위해 모인 하우스의 공용 거실에서 열여섯 살 수민이 열여덟 살 준영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본다. “순수한 나이대에 맞게 호감이 티가 나네요”란 진행자의 멘트가 깔린다. -티빙 오리지널 ‘소년 소녀 연애하다(소소연)’

티빙 오리지널 ‘소년 소녀 연애하다(소소연)’ 스틸컷. 티빙 제공

영화나 드라마 속 한 장면이 아니다. 말 그대로 ‘리얼’한 상황. 지난 2021년 시즌8까지 나온 KBS ‘학교’ 시리즈를 비롯해 넷플릭스 시리즈 ‘좋아하면 울리는'(2021),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2022) 등 10대의 첫사랑을 다룬 드라마는 이제 익숙하다. 이제 10대의 연애는 리얼리티의 중심으로 진출했다. 한때 사회에선 금기시됐던 청소년의 연애가 ‘첫사랑’, ‘설렘’의 키워드와 함께 연애 리얼리티의 한 축이 된 것이다. 출연자 간 감정 대립을 적나라하게 노출하는 등 자극적 설정으로 ‘도파민 중독’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성인 리얼리티와 다른 풋풋함이 매력 포인트다.

도파민은 가라…서툰 청춘의 성장 스토리가 왔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솔로지옥’ 시리즈는 어른들의 연애 리얼리티로 큰 주목을 끌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의 ‘솔로지옥’부터 ENA·SBS플러스 ‘나는 솔로’까지 최근 연애 프로그램은 ‘돌싱'(돌아온 싱글)에 ‘환승'(헤어짐이 가까워질 때쯤 새로운 연애를 하는 것)을 다루는 등 ‘자극성’을 연료로 삼았다. 나올 만한 연애 프로그램이 다 나왔다 싶을 때쯤 방송가가 눈을 돌린 대상이 10대다. ‘소소연’의 이언주 작가는 지난 9일 인터뷰에서 “10대를 이해할 수 있고, 10대도 함께 볼 수 있는 콘텐츠가 없어 ‘소소연’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청소년 연애가 자연스러워진 현실도 영향을 끼쳤다. 10여 년 전만 해도 전국 중·고등학교의 80% 이상이 교칙으로 학생들의 이성교제를 금지했지만 학생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면서 이성 교제에 관한 규정 자체가 인권 침해라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술과 스킨십 없는 연애 프로그램 본 적 있나요?’

“현존하는 연애 프로그램에선 술이 감정의 매개체인데, 우리 친구들 손엔 우유랑 주스가 있었어요.”

어른의 연애를 다룬 티빙 ‘환승연애’를 연출한 이희선 PD는 성인 간 연애와 다른 10대 연애의 차별성을 ‘무해함’이라고 정의했다.

실제로 ‘소소연’과 ‘열아홉 스물’은 ’10대들의 연애는 불순하지 않을까’라는 편견과는 거리가 멀다.

‘소소연’의 배경은 한 시골 마을로 아이들은 데이트로 시골길에서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예고생답게 연습실에서 즉흥 연주를 한다. 패널 문상훈은 “도파민 중독 사회에서 다른 연애 프로그램이 담배라면 ‘소소연’은 금연초”라고 비유했다. 다른 프로그램이었다면 감정싸움이 폭발했을 삼각관계에서도 출연자들은 의연하다. ‘열아홉 스물’에서 자신이 좋아하던 지우가 친구 정윤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세연은 “지우 덕분에 이런 감정을 알게 돼 고마워요. 제 마음도 강해졌어요”라고 말한다. 여기서 읽어낼 수 있는 키워드는 ‘성장’이다. 연애 과정을 통해 감정적·인격적으로 성장하는 시기인 10대라서 가능한 서사다.

티빙 오리지널 ‘소년 소녀 연애하다’의 한 장면. ‘소소연’은 한 편의 청춘 드라마처럼 무해함에 초점을 맞춰 전개된다. 티빙 유튜브 채널 캡처

넷플릭스 오리지널 ‘열아홉 스물’에서 세연(왼쪽)은 지우에게 호감을 표현하지만, 지우는 세연의 친구인 정윤에게 더 큰 호감이 있다고 말한다. 세연은 엇갈린 감정에 힘들어하면서도 의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인다. 넷플릭스 제공

“녹화 현장에 상담사·교차 검증까지” 제작진 노력 중요

10대 연애의 순수함, 무해함을 다루는 것은 좋지만 아직 학생들인 10대인 만큼 사전 검증과 출연 이후 관리에 대한 제작진의 노력은 필수다. 제작진들도 이를 염두에 두고 있다. ‘소소연’은 녹화 현장에 심리상담사를 상주시켜 출연자들의 정서적 안정을 돕는다. 검증을 위해 출연진 부모님은 물론 친구들, 학원 선생님까지 사전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 작가는 “학교폭력 등 문제 되는 것뿐만 아니라 리얼리티를 참가할 때 심리적으로 힘들 수도 있어서 (출연진) 주변 사람들을 통해 면밀히 체크했다”고 설명했다.

10대 연애에 대한 보수적 입장도 여전한 만큼 대중을 설득하는 것도 여전한 숙제다. 10대들의 자연스러운 감정을 어떻게 보여주는가가 관건이다. 이 작가는 “10대 관련 콘텐츠는 나올 수 있는 것들이 많아 아직 개척 안 된 시장”이라면서 “세대 간 선입견도 있겠지만 귀여운 한 편의 영화처럼 봐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근아 기자 galee@hankookilbo.com

출처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3111317460000263?did=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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